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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 Harbor, 그 날의 하와이를 기억해

by 7pipeline 2023. 1. 4.

하와이 진주만에서 볼 수 있는 하얗고 커다란 선박

 

1. 나도 휴일에는 늦잠을 자고 싶다

눈을 뜨는 시간이 놀랍도록 일정하게 두 시간씩 앞당겨진다. 첫날은 오후 2시, 둘째 날은 오후 12시, 그리고 오늘은 오전 10시다. 내일은 과연 오전 8시에 눈을 뜰 것인가?

사실 더 잘 수도 있었는데, 아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날에는 그럴 수가 없다. 혼자 알아서 놀면 좋으련만 꼭 나를 깨워서 같이 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자고 있으면 혹시라도 깨울까 봐 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걸어 다닌다. 그런데 왜 아들은 항상 시끄러운 소리로 나를 깨우는 걸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45분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최대한 버텼다. 

 

2. 음식이 이게 뭐야, 괜히 먹었어

오늘의 첫 끼니는 집 앞에 있는 한국 슈퍼마켓에서 먹기로 했다. 그 안의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팔기 때문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설렁탕과 아들이 고른 치킨커틀릿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상점 안을 구경했다. 매번 해외로 여행을 다닐 때마다 아들은 꼭 한국 브랜드의 과자를 고른다. 새로운 종류의 간식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굳이 익숙한 과자를 고르는지 모르겠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늘 먹던 것만 선택했던 것 같다. 나와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예전에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서 자본주의와 소비에 관한 내용을 봤던 기억이 났다. 습관처럼 한국에서 즐겨 먹던 과자를 고르는 아들에게 살짝 눈치를 줬다. 이따 물놀이를 할 때 먹을 김밥과 과자 두 봉지만 서둘러 계산하고 나왔다.

 

음식이 나왔다. 설렁탕은 육개장 사발면 용기 같은 곳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아들이 주문한 치킨커틀릿은 두께가 어마어마해서 보기만 해도 질릴 지경이었다. 언제 튀겼는지, 혹은 한 번 튀긴 음식을 다시 튀긴 건지 모르게 음식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순간 식욕이 사라지며 심지어 화가 날 정도였다. 이게 과연 먹으라고 만든 음식이란 말인가! 웬만하면 아들에게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하는 편인데 도무지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목감기가 여태 낫지 않아 목 넘김이 힘든 상황이었다. 음식을 거의 다 남기고, 다신 여기에 오지 말자면서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는 차에 타자 마자 초콜릿 봉지를 뜯었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내일은 건너편에 있는 일본 슈퍼마켓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도 역시 조그맣게 푸드코트가 있기 때문이다.

 

3. 진주만 습격 사건,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남편이 계획한 오늘의 일정은 진주만에 갔다가 코올리나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 '진주만'을 보고 오는 건데. 뒤늦은 후회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바람이 불 땐 시원하다가 바람이 멈추면 금세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워지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입구에 도착하니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대신 3달러를 지불하면 주차장 옆에 있는 짐 보관소에서 가방을 보관해 준다고 한다. 카메라를 제외하고는 지갑, 음식 등은 모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진주만 내부에서는 기념품과 간식을 팔고 있었다. 지갑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면서, 현금만 챙기라는 건가? 도대체 왜 지갑조차 반입할 수 없는 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3달러를 아끼기 위해 짐 보관소 대신 차 안에 가방을 두고 되돌아왔다. 

 

진주만 내의 전시관들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USS 애리조나 기념관에 가기 위해 관광 안내소에서 왕복 보트 티켓을 받았다. 보트 역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보트를 타기 전에는 극장에서 20분짜리 영상을 관람하며 기다리면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영상은, 단 두 시간 만에 참혹한 전쟁터로 변해버린 하와이를 재현한 다큐멘터리이다. 처음에는 잔잔하고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그러다 상영 중간 부분부터 전쟁이 시작되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들은 그 소리를 듣고 무섭다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보트를 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므로 중간에 나갈 수가 없었다. 끝날 때까지 울지 않고 잘 참아준 아들이 대견할 뿐이었다.

드디어 보트에 탑승했다. 추모공간과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아들은 무척 신이 났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보트에 탔다는 것 자체가 신이 나는지, 아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주만에서 잠시만 시간을 보낼 줄 알고 수영복을 미리 입혀서 데리고 온 건데,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더웠을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음부터는 귀찮더라도 꼭 바닷가에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혀 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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