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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도 B도 전부 다 가질 수는 없을까

by 7pipeline 2023. 1. 8.

책상 위에 쏟아진 다양한 색깔의 레고 블럭

 

1. 내가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이유

호텔에서는 투숙객에게 셔틀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홍콩역에서 내렸다. 남편은 셔틀버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과 탑승 위치를 확인한 뒤 버스에서 내렸다. 정확히 2년 1개월 만에 다시 찾은 홍콩이다. 적당히 날이 흐려서 덥지 않아 좋았다. 어스름한 해 질 무렵의 그 분위기도 좋았다. 거기에 적당히 부는 바람까지 더해져 걷기에 안성맞춤인 날씨다. 

 

옆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 걷던 아들이 음반 매장을 발견하자 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목적지도 없고 바쁜 일도 없으므로 아이가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매장 안의 물건들을 만지작 거렸다.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기에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네'라고 한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여행지에서는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는 편이다. 한 번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이때도 아들이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며 사고 싶어 했다. 친정 엄마는 여기까지 왔으니 당신이 하나 사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극구 사양했다. 누군가에게는 일 년, 혹은 몇 년에 한 번뿐인 여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꽤 자주 이렇게 여행을 다닌다. 그런데 그때마다 원하는 것을 다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속된 말로 버릇이 될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는 장난감 하나로 만족하겠지만, 점점 커갈수록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가격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는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이 참 많지만, 나는 그때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사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인생 대신 뭐든 다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아들이 자라서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아들이 때로는 결핍도 느껴 보고, 때로는 풍족함도 느껴보길 바란다. 아들은 자기가 고집을 부려봐야 내가 절대 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뭔가를 가지고 싶다고 떼를 부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내 눈치를 살피며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이다. 

 

 

2. 두 번째 장애물 앞에서 타협하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 두 번째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조악해 보이는 여러 가지 장난감들을 팔고 있는 노점상이었다. 이번에도 아들은 한참 동안 그 앞에서 서성이며 도무지 지나칠 생각을 안 했다. 장난감의 상태는 너무나도 조악해서 몇 번 가지고 놀다 보면 망가질 게 뻔해 보였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져보니, 홍콩에 있는 동안이라도 잘 가지고 놀기엔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아들에게, 홍콩에서 더 이상 장난감을 사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갑을 꺼냈다. 아들은 작은 장난감 하나를 골라야 할 줄 알았는데, 여덟 개가 한 세트인 커다란 장난감을 사주자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나는 고작 100 HKD를 투자하고, 아들에게 후한 점수를 땄다. 그리고 남은 하루를 무척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 

 

3. 홍콩에 왔으면 이 쿠키는 꼭 사야 해

홍콩에서 유명한 쿠키 상점에 찾아갔다. 처음 먹었을 때는 그냥 '먹을만하네?' 하는 정도인데, 한참 지나면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다시 먹을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나는 묘한 중독의 맛. 지난번에 홍콩에 왔을 때는 한참 줄 서서 구입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던 건지, 인기가 식은 건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구입할 수 있었다. 가족,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기 위해 제법 많은 쿠키를 구입했다. 많은 양의 쿠키가 틴 케이스에 들어있었기에 무게가 상당했다. 남편은 무겁다는 말도 없이 계속 그 쿠키를 전부 들고 다녔다. 나는 그 정도로 무거운 줄 모르다가, 잠깐 들어보고 그 무게에 깜짝 놀랐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여기저기 계속 걷자고 했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4. 그렇게 간절했던 장난감이었지만 결국은 사라지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홍콩역으로 갔다. 아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아까 구입한 장난감을 조립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작고 귀여운 손으로 장난감을 조몰락거리며 순식간에 여덟 개를 모두 조립했다. 그리고는 이내 부수었다가 다시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아들은 그 여덟 개의 장난감 중 하나를 특별히 아꼈다. 그리고 남은 여행 기간 동안 주머니에 꼭 넣고 어디를 가던지 함께했다. 하지만 그 장난감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어딘가에 버려졌고, 아예 사라져 버렸다. 장난감을 사주기 전에 나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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