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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

by 7pipeline 2023. 1. 15.

국회 의사당과 빅벤이 보이는 런던 시내 전경

1. 10년 후, 우리가 처음 만난 곳으로

정확히 10년 만이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남편과 내가 결혼한 지 정확하게 1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부부는 영국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고향 사람이지만 그 작은 도시에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영국, 그것도 런던에서 만났고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점으로 10년 후에 다시 런던에 오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10년은 정말 순식간이었고, 사는 게 바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결혼한 지 10년째 되는 날, 우리는 다시 런던 땅을 밟았다. 비록 처음 만난 날로부터 10년은 아니지만, 결혼 10주년도 나름 의미 있는 날짜였다.

 

2. 이코노미의 서러움, 그리고 입국 심사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만석이다. 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88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이 틈에 껴서 함께 이동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순간이동을 하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불편한 자세로 한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더 이상 잠도 오지 않는다.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고 나니 눈이 피곤해서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렵다. 모니터로 계속해서 거리와 시간을 체크했다. 허리도 아프고 속은 불편하고 공기는 답답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하려고 돈을 버는구나. 장거리는 무조건 비즈니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겨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이번엔 네 시간 정도 푹 잔 것 같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두 시간가량 남았다. 그렇게 우리가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였다.

 

아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아빠가 살았던 곳이라고 하니 무척 신기해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흥분 상태였다. 하지만 입국 심사를 하기 위한 줄이 길어지자 곧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미국과 달리, 영국의 입국 심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 예정이야?

- 영국은 처음 온 거니?

- 언제 왔었는데?

- 런던에만 머물 계획이야? 

-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디에 갈 건데?

몇 가지의 형식적인 질문 후에 내 여권에 도장이 찍혔다.

 

3. 시차 적응에 실패한 가족

짐을 찾고 유심 자판기에서 20 파운드짜리 유심을 구입했다. 이제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만 찾으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영국은 운전 방향이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핸들이 오른쪽에 있고, 수동 기어를 사용해서 나는 운전할 수가 없다. 운전 베테랑인 남편도 처음엔 조금 헷갈려했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완전 천천히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새벽 3시가 넘었지만 우리 셋 다 정신이 또렷했다. 이럴 바에 그냥 일어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깜깜할 때 나가기는 무서우니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뜨자마자 일곱 시도 안 돼서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서 나왔다. 차량 내비게이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결국 구글맵을 이용해 목적지를 설정하고 출발했다. 제일 먼저 대형 마트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영국에 왔으니 아침 메뉴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주문했다. 게란 프라이, 소시지, 토스트 등 원하는 메뉴만 선택해서 접시에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제 조리를 한 건지 음식이 죄다 말라비틀어져 있고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보기만 해도 식욕이 떨어진다. 이럴 때는 그냥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최고인 것 같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평균 이상은 하니 말이다. 

 

4.  모든 날, 모든 순간, 모든 것이 좋았다

오늘의 관광 장소는 '윈저 성'이다. 오전 일찍 도착해서인지 주차 공간이 제법 많았다. 주차비가 전부 달라서 일일이 확인해 봐야 한다. 2시간에 1파운드인 곳도 있고, 시간당 4파운드나 받는 곳도 있다. 우리는 일찍 도착한 덕분에 운 좋게도 저렴한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날씨가 무척 변덕스럽다. 비가 오다가 해가 반짝 났다가 다시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내 손을 꼭 잡고 따라 걷던 아들이 갑자기 멈춰 선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어딘가를 향해 빠른 걸음을 걷는다. 아니나 다를까, 살아 움직이는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나도 얼른 뒤쫓아 가보니 백조 무리가 보인다. 그 무리 앞에서는, 상인들이 백조들이 먹을 수 있는 사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한 봉지에 60펜스씩 팔고 있는 사료를 샀다. 그리고 아들은 그렇게 한참을 서서 백조들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었다. 더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을 달래 다시 길을 걸었다. 골목을 따라 열심히 걷다 보니 드디어 윈저 성이 보였다. 흐린 날씨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윈저성 주변은 이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여서 그런지, 집집마다 현관에 내걸어둔 화려한 리스가 눈길을 끌었다. 각각의 리스들은 화려하고 개성 넘쳤다. 기성품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리스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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