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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껫, 지상 낙원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by 7pipeline 2023. 1. 18.

1. 우리가 머물렀던 1413호

두 번의 경유지를 통해 푸껫에 도착하니 날짜가 바뀌어 있다. 어느 정도 힘들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통이었다. 정말 두 번 다시는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을 정도다. 묵직한 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빨리 폭신한 침대에 눕고 싶을 뿐이었다. 내 몸뚱이는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 같았다. 하지만 1413호의 객실 문을 여는 순간, 모든 피로가 씻기듯 날아갔다. 몸이 힘드니 계속 인상을 찌푸리며 다녔는데, 객실을 보는 순간 절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곳이 우리가 아흐레 동안 머물 숙소라니. 꿈만 같았다.

잠에서 깬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이는 지난밤 분명히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눈을 떠 보니 생전 와본 적 없는 어느 호텔의 침대 위에 누워있으니 얼마나 놀라웠을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표정만으로도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 어떻게 그렇지?

깜짝 놀라는 아이가 몹시 귀여워서 이불로 돌돌 말고 꼭 안아주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 새로운 장소, 게다가 바로 맞은편 객실에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으니 아이에게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으리라. 사실 아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이곳은 천국과 같았다. 언제 또 이렇게 호사스러운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싶었다. 

 

2. 지상 낙원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지

많은 도시에 여행을 다니고 좋은 숙소에도 많이 머물러 봤지만 이렇게 넓은 숙소는 처음이었다. 방 두 개와 화장실 두 개, 다이닝 룸과 넓은 테라스까지 모든 것이 과분했다. 테라스는 얼마나 넓은지 8인용 식탁과 썬베드가 있음에도 뛰어다닐 만큼 거대했다. 메인 침실의 킹 베드는 우리 셋이 자기에도 충분히 넓었다. 그래서 싱글베드 두 개가 있는 나머지 방 하나는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 또한 웬만한 호텔 방 하나의 크기보다 훨씬 넓었다. 커다란 통창을 사이에 두고 침실과욕실이 있어서, 침대에 누워서 아이가 욕조에서 물장난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닥은 전부 대리석이었고, 보통의 가정집에서나 사용할 사이즈의 커다란 옷장과 수납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굳이 방 두 개를 빌리지 않고, 하나만 예약했더라도 우리 여섯 명이 충분히 사용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리조트 자체 또한 규모가 엄청나서, 객실에서 메인 수영장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버기카를 호출해서 사용해야만 했다. 키즈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서, 아이는 자기가 원할 때 언제든지 가서 놀 수 있었다. 커다란 수영장은 따가운 볕 때문에 종일 수온이 따스했고, 조용히 수영을 즐기고 싶은 투숙객을 위해 프라이빗 풀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라운지에서는 시간대 별로 음료와 음식이 제공됐고, 해피아워 때는 주류도 무료로 제공해 줬다.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이겠는가.

 

3.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

유일한 단점이라면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프런트에 미리 부탁만 하면 언제든 기사님들이 대기하고 있었기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낮에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물놀이를 하다가, 점심때쯤 시내로 나가 관광을 하고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9일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바랐다. 달콤하고 저렴한 열대과일을 원 없이 먹고,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는 받을수록 이득이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직 마사지를 받기 힘든 아들은, 닥터 피시 어항에 작은 발을 집어넣고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낄낄거렸다. 매일매일이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남이 청소해 주는 곳에서 지내며, 적은 비용으로 몸의 피로를 풀 수 있고,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잔뜩 먹을 수 있다니.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볼 수 있을까. 사실 여행 기간 내내 즐겁지만은 않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것들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고 좋았던 추억만 가득하다. 기억의 왜곡, 추억의 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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