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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중독된 가난한 여행자와 파인애플 농장

by 7pipeline 2023. 1. 3.

농장의 푸른 잔디 위에 놓인 파인애플

1. 도대체 언제쯤 완벽하게 시차에 적응할까

눈을 뜨자마자 몸을 비틀어 시간부터 확인했다. 오늘은 열 두시에 눈을 떴다. 뜨겁고 정체된 공기는 잠에 드는 것도 잠에서 깨는 것도 힘겹게 만들었다. 새벽에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고, 늦게 일어난다고 한들 전혀 개운함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어제보다 두 시간 빨리 일어났으니, 그래도 나름 시차에 적응한 건가. 정신을 차리자 견디기 힘든 더위가 엄습해 온다. 빨리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버티다가 겨우 수건을 챙겨 들고 샤워를 하러 갔다.

 

2. 이상하게 계속 커피 생각이 나네

차를 타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두 시가 넘은 시간이다.

- 시간이 늦었으니까 밥을 먼저 먹을까?

- 응, 그러자

밥을 먹고 나니 이번엔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평소에도 하루에 한 잔 이상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커피 중독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제 하루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고 이토록 계속해서 커피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중독이 맞는 것 같다. 남편이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 안 돼. 커피 값이라도 아껴야지. 렌터카 때문에 이미 예산 초과란 말이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나 역시 커피를 마시고 싶다.

- 이게 뭐야. 하와이 난민 체험도 아니고. 커피 사줘. 커피 마실래!

-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어떤 커피 마실 거야?

- 커피 맛만 나면 아무거나 다 좋아.

심각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답하다가 남편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가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일인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뭔가 귀에 익은 노래를 들으며 테마파크를 향해 출발했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하늘은 무척 맑았다.

 

3. 파인애플이 농장이지만 파인애플은 안 보여요

농장에 도착하니 곧게 뻗은 나무들이 보였다. 그중 유독 눈에 띄던 나무는 '레인보우 유칼립투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만큼이나 색이 너무 예뻐서 난 누군가 나무에 페인트칠을 해놓은 줄 알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원래 그렇게 예쁜 색을 가진 나무라고 한다. 파인애플 테마파크는 작지만 무척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파인애플이 가느다란 줄기 끝에 매달려서 자라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아담한 정원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파인애플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매표소 직원이, 이미 수확이 끝난 후라 볼 게 없을 거라고 말했다. 고민이 됐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곳에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싶었다. 아쉽지만 그냥 타는 수밖에는. 

기차는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10분 정도 기다린 뒤에 탑승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직원들이 사진을 찍어준다며 파인애플을 건넨다. 이때 찍은 사진은 나중에 기차에서 내린 뒤에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가격 또한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

기차를 타고 농장을 왕복하는 데에는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 사이 가이드는 신나는 노래와 함께 이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표소 직원의 말대로 농장은 정말 황량함 그 자체였다. 수확이 끝난 후의 농장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과 흥겨운 음악만으로도 그 20분은 충분히 가치 있고 즐거웠다.

남편과 아들이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혼자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아들이 좋아하는 솜사탕을 발견했다. 아들 몰래 솜사탕을 사서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솜사탕을 집어 들었는데, 가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설탕을 녹여 만든 솜사탕이 10달러씩이나 하다니.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슬프지만 솜사탕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이곳에선 특산품이라는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다. 토핑으로 올려진 파인애플 과육은 달고 맛있었지만 아이스크림 자체는 지극히 평범했다.

결론적으로, 파인애플을 수확하기 전이 아니라면 이 농장에 가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장기간 여행을 해서 시간이 아주 많다면 모를까. 이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만한 관광지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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