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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여덟 시에 잠들고 새벽 세 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by 7pipeline 2023. 1. 16.
런던 쇼핑 명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1. 최고의 렌즈는 사람의 눈이다

주택가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멋진 산책로가 나타났다. 'The long walk way'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길은, 이름만큼 길고 곧게 뻗어 있었다. 얼마나 길게 뻗어 있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행책에서도 못 본 것 같은데, 남편은 이런 길은 어떻게 찾은 건지 궁금하다. 멋진 길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어서 카메라에 광각 렌즈, 망원 렌즈, 표준 렌즈를 번갈아 바꿔 끼웠다. 하지만 사진은 실제 보이는 것만큼 멋지게 담지를 못했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져도, 렌즈는 사람의 눈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이런 장관은 사진이 아닌, 직접 가서 봐야만 하는 이유다.
관광객이 원래도 많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났다. 오후 한 시가 되자 주차장도 차량으로 가득 찼다. 그 시간에 우리 가족은 관광을 마치고 유유히 그곳을 벗어났다.

2. 가격은 품질을 대신한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해서 우리의 두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연말 성수기에 갑작스레 오게 된 여행이라, 이미 비행기표에 너무 많은 예산을 소진한 터였다. 그래서 숙소는 프랜차이즈 호텔 중에 비교적 저렴하고 조식이 포함된 곳으로 선택했다. 가격이 저렴하니 당연한 건데 숙소의 상태가 무척 실망스럽다. 역시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딱 내가 지불한 가격만큼의 컨디션과 서비스를 기대해야 한다. 방 안에서 조금 쉬다가 아웃렛 구경이나 하러 가자며 밖으로 나왔다. 아들은 지난밤에 거의 잠을 못 자서인지 차에 타자 마자 잠이 들었다. 보통은 차가 멈추면 아이도 잠에서 깨는데, 이 날은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둘러업어도 깰 줄을 몰랐다. 하필이면 비도 내리고 힘이 들기도 해서 남편과 아이는 카페에 앉아 있고 나만 아웃렛을 둘러보기로 했다. 날씨 탓인지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다지 쇼핑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3.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리다

날이 어두워지며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남편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두 번이나 잘못 들었다. 아웃렛에 갈 때는 30분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아들은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서둘러 잘 준비를 하고 저녁 여덟 시에 침대에 누웠다. 제발 중간에 깨지 말고 아침까지 쭉 잘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새벽 세 시가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일곱 시간 정도 숙면을 취했으니 눈이 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면 또 패턴이 깨질 게 뻔하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가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새벽 다섯 시에 모두 일어났다.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여섯 시 반부터다. 아들은 전날 오후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무척 허기져했다. 어제 사둔 바나나와 샌드위치를 먹이고 여섯 시에 샤워를 했다. 미라클 모닝이 따로 없구나. 아들은 정말 배가 많이 고팠던 건지, 스스로 포크를 들고 적극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치즈, 소시지, 토스트, 우유, 요구르트 등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배불리 먹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아침을 먹고 오늘의 관광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4.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스토우 온 더 월드'이다. 남편은 이제 오른쪽 핸들에 조금 적응이 된 것 같다. 별 무리 없이 예상 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척 쌀쌀했지만 하늘은 맑았다.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데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대부분의 상점은 10시나 되어야 문을 열기 때문에 상점 구경은 할 수 없었다.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버튼 온 더 비치'라는 곳인데, 작고 예쁘게 꾸며진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이버리를 거쳐 버퍼드에 도착했는데, 버터드는 기존 두 마을과는 달리 규모가 조금 있었다. 상점 수도 제일 많았고 나름 교통 체증도 있었다. 작고 예쁜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빵은 질리지만 딱히 먹을 만한 메뉴가 없다. 샌드위치와 파니니, 음료를 시켰다. 역시나 양이 너무 많아서 샌드위치 반쪽은 포장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옥스퍼드였는데 확실히 도심으로 갈수록 교통량이 어마어마하다. 원래는 옥스퍼드에 있는 박물관에 갈 계획이었는데, 길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재잘재잘 떠들던 아들이 조용하길래 뒤돌아 봤더니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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