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
하염없이 홍콩 도심의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는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남편은 어제도 침사추이에 가고 싶어 했다. 스타페리를 타고 가서 레이저 쇼를 보고 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썩 내키지 않았다. 일단 깜깜해질 때까지 돌아다니는 게 무서웠다. 아무리 홍콩이 세계적인 관광지라도 해도 우리나라처럼 치안이 훌륭한 곳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밤에 돌아다니는 건 내키지 않았다.
- 그거 지난번에도 봤잖아. 그때도 별거 없다고 했던 거 기억나는데?
- 그랬나? 그럼 그냥 가지 말자.
남편은 어제 분명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또 야경을 보고 싶다며 의중을 내비친다. 오늘 안 가면 내일 또 가자고 할 게 뻔하다. 그래, 이럴 땐 그냥 빨리 끝내버리는 게 상책이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썩 내키지 않지만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2.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평생의 추억
홍콩은 2년 만의 방문이다. 그땐 중앙 광장 분수대에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찻잔 조형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번엔 하늘색의 유니콘으로 바뀌어 있었다. 관광객들은 유니콘 주변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우리 가족 역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사실 홍콩에 오기 위해 짐을 쌀 때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엔 워낙 여정이 짧기도 했고, 이미 여러 번 왔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 유명하다는 관광지는 이미 다 가봤기에 특별히 사진을 찍을 것 같지 않았다.
짐 목록에서도 처음부터 카메라는 제해 두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진은 카메라로 찍어야 하지 않겠냐'는 지인의 조언에 결국 카메라를 챙겼다. 그리고 무척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 성능도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핸드폰이 카메라 렌즈의 성능을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출력을 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출력을 하지 않더라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하지만 결국 사진에 남겨지는 건 어떤 장소라든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 달 전의 우리, 일 년 전의 우리, 십 년 전의 우리는 비록 같은 장소에 있을지라도 전부 다 달랐다.
사진을 찍다 보면 여행의 많은 부분을 놓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그 주장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두어야 오랜 시간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때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간단하게나마 글로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그 추억은 언젠가 완전히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과 글이라는 기록으로 남겨짐으로써,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평생의 추억이 되었다.
3. 우리에게는 늘 다음이 있다
우리 가족은 언제 해가 질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시계를 들여다봐도 8시까지는 아직 멀었다. 해가 지고 깜깜해져야 '심포니 오브 라이트'라는 레이저 쇼가 시작된다. 나는 다시 남편을 채근했다.
- 그냥 가자, 지난번에도 이거 봤잖아. 별로 재미도 없었어.
이번엔 남편이 바로 수긍한다.
- 그래, 가자. 나중에 또 오면 되지.
오늘 못 보면 다음에 여기를 또 오자는 말인가? 자리를 뜨면서도 뭔가 계속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다시 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왔다. 어느덧 해가 지고 하늘은 깜깜해졌다. 불 품 없이 크기만 한 건물들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되려면 여전히 한 시간도 넘게 남았다. 이제 더 이상 미련 따위는 두지 않고 그곳을 떠나기로 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금쯤이면 빅토리아 항구에서는 레이저 쇼가 한창이겠구나. 하지만 전혀 아쉬운 마음은 없다. 남편의 말대로 다음에 또 올 기회게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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