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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맛집'엔 맛있는 음식이 없다

by 7pipeline 2023. 1. 9.

야자나무와 주황색 썬베드로 둘러싸인 야외 수영장

 

1. 수영을 하기엔 덥지만 춥습니다

남편은 아들의 자는 모습이 예쁘다며 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쁘다. 이건 분명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느긋하게 호텔 조식을 먹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수영장에 내려왔다. 우리보다 먼저 온 투숙객들이 대부분의 썬베드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수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햇볕은 무척 뜨거웠지만 바람이 불어서 땀이 날 정도의 날씨는 아니었다. 게다가 물이 아직 데워지지 않아 수온이 무척 낮게 느껴졌다. 남편과 아들이 조심스레 물속에 발을 넣었다. 하지만 이내, '앗, 차가워!'라고 외치며 발을 뺐다. 선뜻 물속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렸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저 썬베드에 앉아 바라만 볼 뿐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한여름에도 물놀이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아들은 물이 차갑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썬베드에 누워버렸다. 물놀이는 고작 20분 정도 하고, 썬베드 위에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결국 수영장을 이용한 건 이 날이 전부였다. 물이 너무 차갑고, 바람까지 불어대니 추위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온전히 수영장 때문에 고른 숙소였는데 말이다. 앞으로 홍콩에서는 휴양지 욕심은 버리고 관광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 키오스크, 그 편리함과 씁쓸함 사이

그깟 물놀이 조금 했더니 금세 배가 고프다.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간단히 허기를 달랠 간식을 주문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무척 생경하게 느껴지는 기계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스크린을 보며 주문할 수 있다니 너무 편리했다. 직원이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기껏 메뉴를 선택해서 주문을 했는데 직원이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하면 긴장으로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뒤에 기다리는 줄이 길기라도 하면 어떤가. 영어권 국가는 그나마 괜찮지만, 영어가 서로 불편한 비영어권 국가들을 여행할 때는 늘 겪는 일이다.

키오스크로 인해 대리점 점주들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으니 금전적 이익도 가져다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얘기다.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3.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오후 두 시가 훌쩍 넘어서야 우리 가족은 호텔 주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또 걸었다. 남편은 구글맵을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자기가 가고 싶었던 식당을 기어이 찾아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허름한 식당 앞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30분도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식당 주변에는 버려진 식재료가 가득했다. 손질하고 남은 생 고깃덩이는 악취를 뿜어내며 벌레를 유인했다. 나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위생적이지 않으면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남편은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고 고집을 피운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식당 테이블은 국수 그릇 하나 놓으면 딱 맞을 정도로 무척 작았다. 게다가 합석은 기본이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먹는 것도 감내해야 했다. 심지어 이미 누군가 먹고 나간 자리를 치우는 것도 손님의 몫이었다. 종업원들은 너무 바빠서 겨우 주문만 받을 뿐이었다. 그조차도 무척 버거워 보였다. 서비스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 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남편은 묵묵히 테이블을 닦고, 메뉴 두 가지를 주문했다. 남편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그릇에 국수가 한가득 담겨 나왔다. 맛은 평범 그 제차였다.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래서 나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할 만큼 진짜 맛있는 곳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식당을 나가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내니 1달러짜리 동전 하나가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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