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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하와이 관광을 시작해 볼까

by 7pipeline 2023. 1. 3.

파도 치는 바다에서 바디 보딩하는 사람들

 

1. 하와이에 왔으면 관광을 해야지

눈을 뜨니 두 시다. 실컷 잔 것 같은데도 몸이 찌뿌둥한 걸 보니, 컨디션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아홉 시니, 나름 일찍 일어난 거라고 해야 되나?

시끄럽고 더운 집에서 선잠을 자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몸은 물 먹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두 눈은 쉽게 떠질 것 같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은 나보다 훨씬 일찍 오전에 일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깨지 않자 쫄쫄 굶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제 대형마트에서 잔뜩 장을 봤으니 꺼내 먹으면 좋으련만. 왜 냉장고조차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서둘러 우동을 끓여서 먹고 밖으로 나오니 공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집 안은 분명 찜통 같았는데, 밖은 어쩜 이렇게 시원한 건지 모르겠다. 하와이에서는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날씨가 이러니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숙소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직 시차 적응을 못해서 몸도 피곤하고 시간도 늦었으니 천천히 드라이브나 하기로 했다.

 

2. Hanauma Bay, 가는 날이 장날

첫 번째 코스는 하나우마 베이다. 하와이에서 가장 유명한 스노클링 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한 날은 칠레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임시 폐장한 상태였다. 원래는 입장료도 내야 하고 주차비도 따로 받는 곳이지만, 이 날은 전부 무료였다. 폐장이라고 해도 해변가를 제외한 곳은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조그맣게 방문자 센터와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작은 박물관과 흡사한 방문자 센터는, 규모와 관계없이 어딜 가든지 참 잘 꾸며놓은 것 같다. 이번엔 주차장 바깥쪽 산책로도 걸어가 보기로 했다. Kalanianaole Highway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 방향에서 봐도 코코 헤드가 보인다.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 그보다 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새삼 우리가 지금, 여기, 하와이에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우마 베이는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수심이 깊은 곳까지 속이 훤하게 다 들여다 보인다. 금방이라도 바닷속에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하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3. Lanai Lookout 그리고 Sandy Beach

오하우 72번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달려보기로 했다. 차를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Scenic Point라 써있는 이정표가 보이기에 일단 멈춰 섰다. 길을 가다가 차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걸 보면 일단 내려야 한다. 그중 대부분은 제법 훌륭한 볼거리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날이 맑으면 라나이 섬이 보여서 Lanai Lookout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혹은 사진 속에서도 그 섬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날은 맑았는데 말이다.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 때문일까. 날뛰는 파도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탓일까. 이곳에서도 역시 고개만 돌리면 코코 헤드가 보인다. 그냥 조금 특이하게 생긴 산자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용암 자국이라고 한다. 용암이 흘러내린 자리마다 굴곡이 생겼다고 하니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Sandy Beach라고 하길래 부드러운 모래를 상상했다. 고운 모래가 가득 깔린 해변과 잔잔하게 너울대는 파도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거친 파도로 유명한 바디 보딩 명소라고 한다. 높게 치솟는 파도를 보니, 파도에 휩쓸릴까 무서웠다. 실제로 이렇게 서핑이나 바디 보딩을 즐기다가 실종된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하니 더욱 무서워졌다. 아무래도 해양 스포츠는 평생 도전하지 않을 것 같다.

남편과 아들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거닌다. 나는 모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멋진 서퍼들의 실루엣을 감상했다. 모래 틈에서는 작은 게가 쉼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은 금요일의 해질 무렵이다.   

 

4.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간

저녁을 먹기 위해 방향을 틀어 쇼핑 센터로 이동했다. 바로 전날까지 한식을 먹다 온 거라서 그다지 한국 음식이 당기지 않았지만, 우리는 코리안 BBQ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와이에서는 갈비가 참 유명하다. 한국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인지, 대형 마트에서 김치와 불고기도 팔아서 깜짝 놀랐다. 아들은 입이 짧기 때문에 2인분만 주문했다. 분명 배도 고프고 맛도 괜찮았는데 음식을 절반 가까이 남겼다. 여기가 미국령이라는 것을 깜빡했구나. 우리 부부 기준으로, 1인분 양이 실로 어마어마해서 대부분의 식당에서 음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제법 늦었기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아들 눈에 포착된 건 바로 오락실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아들은 내 눈치를 보더니 그대로 유턴해서 반대 방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렇게 오락도 몇 판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마트에 잠시 들렀다가 숙소로 오니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그 늦은 시간에도 숙소 안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한국의 우리 집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나는 항상 숙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깨끗하기만 하면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반면 남편은 늘 다른 무엇보다 숙소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여행지에 오면 대부분 밖에서 관광을 하고 숙소에서는 잠만 자니, 숙소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필두로 내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비록 잠만 잔다고 할지라도, 숙소가 쾌적하고 조용해야 낮 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이번처럼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 걸 알면서도, 나는 밤마다 주변 호텔을 검색하게 되었다. 그토록 이 공간에서의 탈출이 간절한 9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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