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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홍콩, 그리고 첫 번째 마카오

by 7pipeline 2023. 1. 13.

안개가 자욱한 강을 건너고 있는 유람선

 

1.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친다

홍콩은 벌써 네 번째  방문하는 도시다. 하지만 딱히 좋다거나 특별한 기억은 없다. 선호하는 여행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주 오게 된다. 이번에도 그냥 어쩌다 보니 시기가 딱 맞아떨어져서 오게 되었다. 이번 여행이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카오를 방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홍콩엔 여러 번 와봤지만 마카오는 처음이다. 조금은 기대가 된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오전 10시라서 세 시간 전인 7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여유 있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연휴도 아니고 휴가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걸까. 짐을 부치는 데에만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짐을 부쳐야 아침도 먹고 면세품도 찾고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다음부터는 오후 늦은 시간이나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짐을 부치고 나니, 이번엔 탑승수속을 하기 위한 줄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 동반 고객'으로 분류되어 '패스트 트랙'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긴 줄을 가로질러 제일 앞에서 입장하려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우쭐하고 흡족한 마음도 들었다. 남편은, 아들이 쓸모 있을 때도 있다며 농담을 한다.

   

국적기는 오랜만에 이용해 본다. 아들이 먹을 기내식은 미리 '키즈밀'로 주문을 해두었다. 눅눅하고 뜨겁기만 한 돼지고기 튀김이 나왔다. 아들은 단 한 번도 기내식을 챙겨 먹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음식을 거의 다 먹었다. 홍콩까지는 네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아들에게 이젠 네 시간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는데 피곤하지도 않은지 낮잠도 안 잔다.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화질이 매우 낮은 모니터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혼자 그렇게 시간을 보낼 줄 안다. 나도 헤드셋을 끼고 영화 한 편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다.

 

2. 마카오로 향하는 가깝고도 먼 길

우리가 탄 비행기가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한 시 반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마카오로 넘어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페리를 타기 위해 E2 터미널로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매표소는 무척 한산했다. 마카오까지 가는 페리는 두 종류의 브랜드가 있었는데, 두 페리의 차이점은 내리는 위치였다. 하지만 마카오가 워낙 작은 섬이라 어디에서 내리든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출발하는 페리를 선택했다. 표를 끊고 수하물 택을 보여주면, 비행기에서 따로 짐을 찾지 않아도 곧바로 마카오까지 보내준다. 처음 이용하는 거라 짐이 제대로 올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문제없이 모든 짐이 숙소로 완벽하게 도착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페리 선착장 창구에서 받은 수하물 택은 잃어버리지 말고 잘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

출발 시간 30분 전부터 셔틀을 타고 페리 터미널까지 이동할 수 있다. 시간이 남아서 우리는 한 시간 정도 공항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마자 셔틀을 타기 위해 움직였다. 셔틀의 제일 앞 칸에 타니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았다. 셔틀은 제법 긴 구간을 달리는 동안 급정거와 급출발, 급커브를 반복하며 스피드를 냈다. 

 

3. 다섯 살 아이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한 뒤에는 또 한참 줄을 서야만 한다. 그리고 차례대로 페리에 승선할 수 있다. 페리 내부는 상당히 공간이 넓었지만 상당히 노후되어 있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지 청결해 보이지도 않는다. 창문도 너무 더러워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좌석이 무척 여유 있고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점은 좋았다. 나는 아들이 배를 타면 무척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큰둥했다. 

- 우리 아들 이렇게 큰 배 처음 타보지? 배 어때? 멋지지?

내가 아들을 바라보며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 아닌데. 충충이 보러 갈 때 타 봤는데?

세상에. 아들은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은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충충이'라고 부른다. 다섯 살 때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애들 어릴 때는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봤자 다 소용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긴가민가 하긴 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아이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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