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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이지만 네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줄게

by 7pipeline 2023. 1. 11.

디즈니 랜드를 찾은 사람들과 공주의 성

 

1. 우리가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

일곱 시 반에 알람이 울렸다. 여행지에서조차 알람 소리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게 못마땅하다. 하지만 오늘만은 어쩔 수 없다. 바로 우리 아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날이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아들이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 엄마, 생일 축하해요. 생일 선물로 내 용돈 엄마한테 다 줄게요.

남편이 옆에서 그 말을 듣더니 아들에게 묻는다.

- 엄마한테 다 주고 나면 아들은 앞으로 뭐 먹고살 거야?

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그렇다면 절반만 주겠다고 말을 바꾼다.

- 아빠 생일에는 선물로 뽀뽀만 해 주더니, 엄마 생일에는 현금으로 주는 거야?

남편이 삐친 척해보지만,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여유 있게 조식을 먹고, 꼼꼼하게 씻고, 선크림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수 두 병과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호텔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2. 디즈니랜드에 간 우리 가족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 같다. 아무래도 날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디즈니 랜드가 있다. 디즈니 전용 라인을 타고, 입장하기 전부터 기분을 낼 수 있다. 우리는 입장 티켓을 미리 사두었다. 덕분에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홍콩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여기에 온 것만 같았다. 놀이기구를 한 번 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30분 이상은 줄을 서야만 했다. 물론 이 정도 기다림은 이미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놀이공원에 한번 가면 한 시간 줄을 서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뜨거운 날은 예외다. 봄과 가을처럼 야외활동을 하기에 좋은 날을 제외하고, 한여름에 놀이공원에 가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라이언 킹' 공연과 '골든 미키 쇼'는 운 좋게도 앞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대부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적어도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섬세한 감정 연기와 웅장한 음악, 화려한 분장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아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스페이스 마운틴'은 무려 세 번이나 탈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과연 불꽃놀이까지 전부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놀고먹고 구경하다 보니 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놀이공원에서 열 시간이라니! 그렇게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디즈니랜드를 빠져나왔다. 집에 가려면 오전에 탔던 디즈니라인을 다시 타야만 한다. 디즈니랜드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한 번에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들 틈에 껴서 우리도 몇 번이나 차례를 기다려 겨우 디즈니 라인에 탑승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디즈니랜드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더운 날에 땡볕에서 줄만 서다 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즈니랜드에 간다면 공연과 쇼는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걸 무척 싫어했다. 예전에도 놀이공원에 갔다가 퍼레이드를 보기 싫다며 떼를 쓰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퍼레이드는 내가 포기할 테니, 대신 공연은 꼭 보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3.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내 예상대로 날은 뜨겁고 줄을 서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공연을 보는 도중에 밖에 나가자고 칭얼거렸다. 그래서 난 공연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고, 내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꽃놀이까지 보고 나오면서 내가 한 말은 '다음에 또 오자'였다. 그깟 놀이기구 좀 못 타고, 공연 좀 제대로 못 보면 어떤가. 분명한 것은, 그날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디즈니랜드'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날의 추억이 떠오를 게 분명했다. 잔뜩 기대하고 즐거워했던 아이의 웃음, 웅장하고 멋진 쇼, 환상적인 불꽃놀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여행을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과 끝난 후의 추억이 전부인 것 같다. 막상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힘이 들기도 하고 집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다. 그래서 그 순간을 오롯이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좋았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다 추억이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부분 좋은 것들만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또 길을 나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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