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언젠가는 꼭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나는 글로 쓰고 말로 되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맹신한다. 내가 직접, 그것도 여러 차례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두 번의 경유지를 거쳐야 하는 여정이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이 또한 내가 맹신하는 철칙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 접종도 해야 하고, 경유지인 중국을 통과하기 위해 중국 비자도 따로 발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수고스러움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프리카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2. 시작부터 녹록지 않다
드디어 출발 당일이 되었다. 비행기는 밤 열한 시가 넘어 이륙하는 스케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프리카에 간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한 나머지 오후 네 시쯤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짐을 빨리 부치고 공항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용한 항공사는 이륙하기 네 시간 전, 그러니까 오후 일곱 시가 넘어야 짐을 부쳐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면세 구역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출발층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한식당에서 그저 그런 저녁을 먹고, 드디어 시간이 되어 짐을 부칠 수 있었다. 도착지는 아프리카 케냐이지만, 경유지인 중국에서 짐을 찾아야만 했다. 작성해야 할 서류도 복잡하고 확인할 것들도 많았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면세 구역으로 들어오니 저녁 여덟 시 반이 다 되어간다. 이미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귀찮았다. 면세 구역에 있는 라운지는 9시면 끝나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도 30분 정도밖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아서 그냥 라운지로 향했다.
이른 시간의 비행 스케줄도 너무 힘들지만, 늦은 시간의 비행 스케줄도 다시는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편하게 쉬다가, 공항에 시간 맞춰서 올 걸 그랬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9시가 되자 라운지에서 쫓겨나 다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손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려주고, 우리 부부는 과일 주스를 사들고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의 조그마한 화면으로 미리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며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의 보딩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아 벨트를 채우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륙할 생각을 안 한다. 따로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아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북경에 도착해서도 환승지에서 트랜스 호텔을 이용하는 건 처음이라 한참을 헤맸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 내에 직원들이 보이지 않아서 더 애를 먹었다.
겨우겨우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트랜스 호텔에 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간 것 같다. 외부는 허름한 모텔 같아 보였는데, 내부 컨디션은 의외로 쾌적하고 나쁘지 않았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다.
3. 우리에겐 아직 한 번의 경유가 더 남아있다
오후 12시로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는데,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한국 시간은 오후 1시, 우리의 목적지인 나이로비 시간은 오전 7시다. 남편은 우리가 현지 시간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다며 웃었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는 네 시 반에 이륙한다. 이번에는 공항에 미리 가지 않고 시간 맞춰 이동하기로 했다. 두시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면 딱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텔에서도 딱히 할 게 없고 심심해서 동네 구경이나 할 겸 조금 일찍 체크아웃을 했다. 프런트 데스크에 짐을 맡기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1월이라 무척 추울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쌀쌀한 정도의 늦가을 날씨였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봄이라고 해도 괜찮을 법한 날씨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추울 줄 알았는데 나의 편견이었다.
10분쯤 대로변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작은 호텔, 주유소, 식당 등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계속 가도 구경할만한 무언가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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