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아, 잠 좀 자자
지난 새벽, 아들은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더워서 깬 건지, 내가 옆에 없어서 깬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자유시간을 실컷 누리다가 막 자려던 참이었다. 타이밍이 참 절묘하기도 하지. 나는 재빨리 불을 끄고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아들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 아직 깜깜한 밤이야. 아침이 밝으려면 멀었어.
하지만 아들의 목소리는 이미 잠에서 다 깬 듯했다. 나는 아들을 다시 재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다시 거실 스위치를 켰다. 거실은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게 아들은 두 시간이 넘도록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잠이 쏟아지는 것을 더 이상 못 참고 다시 불을 껐다.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자 소음과 빛, 그리고 더위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하지만 몇 시간 잠을 못 잤기 때문에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2. 어딜 가든 주차가 문제다
아침 메뉴는 팬케이크와 시리얼, 그리고 딸기다. 팬케이크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보라색을 띠는 시리얼은 블루베리 맛이 났다. 딸기는 무척 못생겼지만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니 이미 오후 한 시가 다 되어간다. 아침식사가 아니고 점심을 먹은 셈이다. 남편은 차에 에어컨을 켜놓겠다며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천천히 준비를 마친 후 아들 손을 잡고 뒤늦게 계단을 내려갔다. 남편이 날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소연을 했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건물 1층에는 사무실이 있다. 거기서 일하는 아저씨가 이 건물 안에 주차를 하지 말라고 했단다. 다음에 또 주차를 하면 견인을 시키겠다고 겁을 줬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견인이라니. 우리에겐 주차 허가증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주차 자리도 넉넉한데 꼭 이렇게 야박하게 굴어야 하는 걸까.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남편이 조금 전에 말한 그 아저씨 같다. 여기는 자기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주차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절대 주차를 하지 말라고 또다시 주의를 줬다. 앞으로는 도대체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3. 트래킹 장소 추천, 다이아몬드 헤드
오늘의 관광지는 '다이아몬드 헤드'이다. 공원 초입에서 입장료를 징수한다. 개인은 1달러, 차량은 한 대당 5달러를 지불하면 된다. 그러면 직원이 초록색 티켓을 준다. 이 티켓을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올려두면 된다. 우리는 입구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가방에 생수 두 병을 넣어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트래킹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정상까지 왕복 소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걷기에도 딱 적당한 거리 같다. 하늘은 더없이 맑지만 그늘이 없어 무척 덥다. 절반 정도 걷다 보면 작은 전망대가 하나 나온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면 된다.
다이아몬드 헤드의 최대 고비라고 불리는 99개의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폭이 무척 좁고 경사가 급하다. 나와 남편은 계단을 오를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계단을 좋아하는 아들은 한껏 신이 났다. 나는 무릎이 아파서 몇 번을 중간에 멈춰 섰다. 고행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어두운 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만 통과하면 드디어 정상이다. 어둠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마치 수행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정상에 도착하니 와이키키 시내의 해변과 거리가 보인다. 360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무척 멋지다. 그 장관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어서 수없이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엔 이곳에도 오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열심히 사진을 찍는 날 보더니 남편이 말한다.
- 거봐, 오길 잘했지?
- 응, 당신 말이 맞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어.
4. 쉐이브 아이스를 아십니까
트래킹을 마치고 내려왔다. 비지터 센터 옆에 노란색 푸드트럭이 보인다. 레인보우 시럽을 뿌린 쉐이브 아이스를 파는 트럭이다. 얼음을 갈아 만든 이 음식은 하와이의 인기 먹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한 입 먹어보니 무척 실망스럽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앞에서 먹었던 불량식품 아이스크림 맛이다. 대충 갈아낸 얼음 위에 색소가 듬뿍 들어있는 시럽을 뿌린 그 아이스크림 말이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이런 불량식품을 4천 원이 넘는 가격에 팔다니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아들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숟가락으로 열심히 퍼 먹는다. 색소 때문에 아이의 혓바닥이 금세 보랏빛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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