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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여행자의 평범한 여행 일지

by 7pipeline 2023. 1. 12.

해질녘 공항에서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비행기

1. 배가 고프지만 먹고 싶지는 않아요

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남편이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창문 가득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눈이 떠졌다. 꽤 오랜 시간 잔 것 같은데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어제 디즈니 랜드에서 너무 무리를 하긴 했나 보다. 무려 열 시간이 넘게 밖에서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누군가 침대 안에서 내 몸뚱이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 자고 싶다, 5분만 더 자고 싶다... 주문을 외워 본다. 이불을 잡아당겨 몸에 돌돌 말아 감아 본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아들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용수철이 튀어 오르 듯이 침대를 벗어났다. 아들은 좀처럼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먹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아들의 입에서 '배고프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무조건 뭔가를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엄마인 내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대충 세수를 하고 조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접시에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배고프다고 나를 깨울 때는 언제고, 아들은 음식을 깨작깨작 먹는다. 그러더니 이내 배가 부르다며 요구르트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2.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간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관광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 하지만 우리 셋 다 늦잠을 자버려서 시간이 애매해져 버렸다. 아무래도 전날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남은 시간을 어찌할까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하지만 게으른 우리 가족은 결국 그냥 바로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이럴 때는 우리 가족끼리의 여행이 참 편하고 좋다. 누군가 일행이 있었다면 분명 남는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게 분명하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공항에서 하기로 했다. 사실 이 식당은 홍콩에 도착한 첫날에 가려던 곳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오늘은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나 내 입맛에는 많이 짠 편이다. 나도 평소에 짜게 먹는 편인데, 이런 내가 짜다고 느낄 정도면 진짜 짠 게 맞다. 홍콩은 쇼핑과 야경도 유명하지만, 식도락 여행지로도 유명한데 도대체 맛있는 음식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홍콩에서 먹었던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일칩과 젤리포가 전부였다. 

3. 혼자서도 잘해요

비행기에 탑승해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온갖 소음이 잠을 방해했지만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시계를 한 시간쯤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비행기는 아직 이륙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들은 옆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쓰느라 분주하다. 요즘 한참 글씨를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무슨 글을 썼는지 궁금해서 슬쩍 엿봤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워서 그대로 쓰고 있었다. 글씨도 삐뚤고 맞춤법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서 잘 노니 너무 대견하다. 높은 톤으로 '너무 잘 썼다. 우리 아들 글쓰기 대장이네'라며 아이를 추켜세웠다. 아이는 순식간에 종이 서너 장을 앞뒤로 빼곡하게 채워내려갔다. 그러다 종이가 다 떨어지니 다시 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아예 공책을 몇 권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 조식, 그 딜레마

인천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늦잠까지 자고 푹 쉬다가 비행기를 탔기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역시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조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식이 포함된 호텔 패키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조차 시간 맞춰 일어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늘 조식이 포함된 옵션을 선택한다. 사실 조식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메뉴도 없고, 아침이라 입맛도 없다. 그런데도 호텔 조식을 먹어줘야 뭔가 여행 기분이 난다고 한다. 사실 조식이 포함되든 말든 안 먹으면 그만이긴 하다. 하지만 비용을 더 지불하고 선택했다고 하니 왠지 나도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강제성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 메뉴는 황탯국을 선택했다. 겨우 며칠이지만 한식이 너무 그리웠다. 하얀 쌀밥에 황탯국과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것 같은 흡족함이 느껴진다. 이래서야 어디 한국을 벗어나서 살 수 있으려나 싶다. 그래도 음식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 가족은 또 다음 여행을 준비해 본다. 이번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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